기독교인의 선거 (22대 국회의원 선거)

2024. 4. 10. 20:55- 새일교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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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Ou2pPr3Ws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야 하고 세상에 정치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오늘은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신앙인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할 사명이 있으나 그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해야 합니다. 지금은 정치 진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이 당이든 저 당이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상으로 모두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동성애 문제를 예시로 살펴보겠습니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은 동성성행위, 남녀 외의 다른 성, 성적지향과 같은 것들에 부정적인 의견이나 반대의견을 내놓을 자유를 박탈하고, 모든 국민에게 그와 같은 것들을 수용하고 긍정하도록 강요하는 독재적인 법이 될 위험성이 큽니다. 창조질서에 반하는 법이므로 교회에 위협이 될뿐만 아니라, 신앙 밖의 일반 국민들에게도 상당한 자유를 박탈하는 법이 될 수 있습니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지속적으로 차별금지법/평등법을 발의해 왔습니다. 동성애 축제에도 참여합니다. 국민의힘은 선거를 앞두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면서 민주당에서 평등법을 발의했던 국회의원 이상민을 1호로 영입했습니다. 비대위원장이 꺼내놓은 동료시민이라는 생소한 용어는 동성애 운동과 연관되지 않느냐는 심각한 염려도 있습니다.

 

동성애 차별금지법/평등법 문제 하나만 예시로 들더라도 신앙인들이 어느 곳에도 표를 줄 수 없는 절망의 상황입니다.

 

 

기독교인은 모든 것을 말씀을 통해 바라봐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세상 정치를 바라볼 때도 성경적인 관점을 가져야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소망이 오직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이루실 나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오직 예수님께 있다는 것은 사람을 기대하거나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고 의지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그 호흡이 코에 있어서 언제든지 그 호흡이 끊어지면 모든 도모가 당일에 소멸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예수님 만을 기대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야곱의 남은 자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며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7).

 

이 신앙의 본질을 잊어버리면 정치인을 추종하게 되는 일도 발생합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으로 물들어가고 그 가운데서 어느 정치인이라도 그나마 기독교 신앙에 가까운 정책을 펼쳐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성경말씀과는 거리가 먼 생각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 지도자들이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4). 또한 인심이 악화된 사회 속에서 바른 정치 지도자가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3:6-7). 아이들과 같고 적자들과 같아서 인격과 자질이 결코 지도자 답지 못한 자들이 지도자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4). 또한 잔인하고 포학한 자들이 지도자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9:4).

 

이 시대는 올바른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지도자로 선출될 수 없는 사회이고, 올바른 사람이라도 더러운 현실 정치에서는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예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목적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예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왔습니다. 이 체제가 복음전파가 가능한 체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신앙인은 이 체제에 더 이상 소망을 둘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신론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타협해야 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자유의 의미는 완전히 변질되었습니다. 자유의 뿌리는 신앙의 자유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변질된 자유라는 이름 아래 온갖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과 세력들이 자라났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이 자라나며 세력을 이루어 주류가 되었고, 소위 자유 신학이 교계에 침투했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남녀 간의 절개가 사라졌고, 동성애할 자유, 낙태할 자유 등 왜곡된 자유가 미화되고 수용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둘러싸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언대로 (1:4), 민주주의는 악인이 의인을 삼키는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1:13). 마귀는 분별하기 힘든 미혹으로, 공산주의 사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세상은 날로 악해질 것이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으로 더욱 기울어지게 될 것입니다. 다수의 의견을 따라 지도자를 선출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민주주의는 악인이 득세하는 상황에서는 전혀 올바른 기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시장경제는 각 사람이 일한대로 얻는다는 상식적인 원리와 신앙적 양심과 도덕이 바탕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진 자들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서 나누어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시장경제는 양심과 도덕이 사라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유물주의 물질만능주의만 남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8 13절 마지막을 보면 물질만 따라가던 자들이 사고 팔던 것 중에 사람의 영혼도 있다고 했습니다.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게 되는, 사실상 짐승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변질되고 악용되어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에 있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는 더 이상 기독교인들이 기대하고 의지해야 할 가치가 아닙니다. 우리는 치료할 수 없는 이 세상을 뒤로하고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51:9).

 

이 세속에서는 결코 기독교인들이 원하는 나라가 세워질 수 없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존재이고, 마귀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재림과 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2:4). 우리들 속에 남아있는 죄악의 질이 완전히 사라지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4:4). 만물까지라도 창조 시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8:21). 이와 같은 일들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세상은 결국 악한 자들이 정권을 차지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무신론 공산주의가 그 사상과 세력으로 세상을 집어삼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이렇게 되는 것은 결국 예수님의 재림과 예수님의 나라가 가깝다는 징조이기도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오늘 해야할 일은 정치에 기대를 걸고 이 죄악 세상이 회복되기를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악해지는 세상 가운데서 타협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나가며 예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압박하고 신앙의 자유를 파괴하는 공산주의 세력은 정치적인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통해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세상 가운데서 오직 신앙을 지키며 복음을 전파하며 예수님의 재림과 예수님의 나라를 기다려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세상 나라가 회복되기를 바라거나 세상 정치에 소망을 두는 것은 지식이 없는 이유도 있겠으나 정확히는 예수님의 나라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이 그 심령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속적 즐거움을 예수님 나라의 기쁨보다 더 좋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깊은 곳에 숨겨진 세속적 미련을 버리고 회개하여 예수님의 나라를 기다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