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일교회 말씀 | 시몬과 요한의 사명을 말씀하심

2020. 4. 12. 14:41- 새일교회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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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과 요한의 사명을 말씀하심

- 요 21:15~23, 요절:19 -

 

 서 론

  많은 제자가 있지만 주님은 시몬과 요한을 대표로 세웠다고 본다. 사명적인 이름을 줄 때에도 시몬과 요한에게만 시몬을 ‘베드로’라고 이름을 주셨고 요한은 ‘보아너게’라고 이름을 주시었다(막3:16~17). 베드로라는 뜻은 ‘반석’이란 뜻이요, 보아너게라는 뜻은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몬과 요한의 사명을 말씀한 것을 공부한다.

 

  1대지 : 시몬의 사명을 말씀함 (15~19)

요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한은 십자가 앞에서 주님 대신 아들이라는 사명을 맡았지만, 시몬은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는 일이 있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씩이나 거듭 물어 볼 때에 베드로는 자기 실수가 있으므로 제자들 앞에서 이 사람들 보다 내가 더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하는 말밖에는 아무 말을 더 할 수 없었다. 주님은 시몬의 사명을 말씀하실 때에 “내 양을 먹이라” 하신 것은 베드로의 사명은 은혜시대의 총 책임을 맡은 대표적인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어느 제자보다도 실수가 있었지만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일에 신과 같이 쓰여지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은혜시대의 사명이라는 것은 그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는 사명이다. 다시 말하면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마귀의 흑암에서 생명의 빛을 따라나가도록 증거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베드로의 계통을 따라 양을 먹이는 사명을 하는 자는 중생의 역사가 나리었던 것이다.

  한 번 설교할 적에 3천명이 중생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대표적으로 쓰는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성신을 받지 못했을 때에는 비겁한 사람이었지만, 성신을 받았을 적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기까지 싸워 나갔던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사명을 말할 때에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를 띠우고 원치 아니한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말씀한 대로 된 것이다.

사명이라는 것은 실수가 있다 하여도 그 소원대로 역사를 하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주를 위하여 죽어도 배반치 않는다고 장담하고는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했지만 성신 권능을 주어서 그 소원대로 죽어도 배반치 않고 증거하게 했던 것이다.

 

  2대지 : 요한의 사명을 말씀함 (20~23)

요 21: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요 21: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요 21: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 21: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베드로는 요한을 향하여 그 사명을 물어 보았던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었다. 이것은 요한의 사명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가서 진리 운동이 일어나되 요한을 통하여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후에 베드로는 네로 황제 박해 때 주님의 예언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요한은 남은 자가 되어서 밧모 섬에서 계시록을 받았다. 이 계시록은 읽고 듣고 지켜야 될 예언의 복음이다. 이 진리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리 운동이 아니고, 온 세계가 불로 소멸되는 환란 속에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들어가는 복음이다(계10:7, 14:6).

  기독교의 진리 운동은 베드로에게는 천국 열쇠의 진리를 주어서 세계 민족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사를 했고, 요한에게는 다시 예언의 말씀인 다림줄의 진리를 계시로 주어 주님 재림시에 계시록 10장 11장과 같이 역사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계시록의 다른 천사의 역사는 요한의 받은 계시록을 통하여 일어날 기독교 종말의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까지는 계시록을 봉한 책으로 두었지만 이 책을 열어 증거할 때에는 계22:10이하와 같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 복음은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요, 사9:1~2, 42:6과 같이 역사한 것이다. 그러나 온 세계가 흑암으로 들어가는 대환란이 날 때에 빛이 되는 말씀은 다시 예언의 등불을 들고 주님을 맞이하는 빛이 될 것이니 이것이 계시록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붉은 용의 앞잡이 거짓 선지의 미혹을 이기는 것은 선지서로써 이기며 계시록을 전하는 동시에 선지서를 통하여 큰 변론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 변론은 여호와의 변론이니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을 증거하는 변론이다.

 

 결 론

  우리는 베드로의 전하는 복음을 받아서 구원을 받은 자로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재앙의 날에는 다시 사도 요한의 사명인 계시록을 전할 수 있는 권세의 종으로 역사하다가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