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일교회 말씀 | 처음 사랑과 촛대 문제

2020. 4. 13. 13:44- 새일교회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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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랑과 촛대 문제  

- 계 2:1~7 -  

 

서 론  

 

인간은 사랑이란 것을 원하고 또는 사랑을 남에게 주고 싶어하는 것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기독교는 덮어놓고 사랑을 받고 덮어놓고 준다는 것으로써 촛대교회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알파가 되는 처음 사랑의 사랑을 잃어 버렸다면 오메가인 촛대교회를 이룰 수는 전혀 없을 것이다. 교회는 사랑의 시초가 인간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완전한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처음 열매가 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 인간의 처음으로 맛보는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가 가지고 온 실천의 사랑은 인간 도덕, 수양, 어떠한 교제적인 인간의 사랑을 초월한 처음 되는 사랑의 열매가 이루어진 것이 십자가의 피라는 것이다. 이제 처음 사랑과 촛대 역사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다. 기독교는 완전한 사랑으로 섰으니 그것으로 끝을 맺어야 된다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교회가 완전한 사랑의 본질인 그 정신, 사랑, 중심을 잃었다면 이것은 참포도를 심었지마는 맛이 변한 들포도가 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생의 완전이라는 것은 완전한 사랑을 받은 데서부터 싹이 튼 것이니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이방에 전파된 것도 완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대로 남에게 주기 위해서 피를 쏟은 것이 순교적인 선교의 역사였던 것이다. 요15:13, 요일4:11에 온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목숨을 바쳐서 남을 살리겠다는 것이 온전한 사랑의 불길이 되는 것이다. 만일 기독교에 이것이 없다면 기독교는 세계를 정복할 수는 도저히 없었을 것이다.  

 

 

1. 진리의 사랑으로 시작되었으니 진리의 사랑으로 마쳐야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신자가 사랑을 주장해도 진리의 사랑이 아니라면 이것은 마귀를 초대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진리 때문에 사랑하고 진리 때문에 서로 교제가 된다는 것은 기독교 처음 사랑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요이1~3). 만일 기독교가 종말의 예언의 말씀을 떠나서 사랑으로써 뭉쳐지자는 통합 운동이 된다면은 예언의 말씀을 가해도 감해도 재앙이라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랑이 자동적으로 될 것이니 이러한 사랑을 가진 기독교는 촛대 역사를 일으킬 수가 없을 것이다.  

 

 

2. 기독교 사랑은 겸손한 사랑이다  

 

만일 남이 나를 유익하게 한다면 사랑을 하고 유익이 안되면 배척을 한다는 것은 거짓 선지의 사랑일 것이다(미3:5~6). 하나님의 아들이 말구유에 탄생을 했다는 것이 기독교 사랑의 시발점이다. 겸손한 자리에서부터 걸어간 일이 사랑을 가지고 온 그리스도의 길이다.

 

겸손한 출생, 겸손한 노동, 겸손한 전도, 겸손한 죽음, 겸손한 부활, 겸손한 승천의 주로서 지금도 죄인을 향하여 울면서 약한 자에게 능력을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를 범죄한 자에게 속죄의 은총을 주기 위해서 겸손히 인간을 대해 주고 계신 사랑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효과를 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겸손한 사랑이 하늘 본부에서 행하는 역사라면 겸손이 없는 사랑은 촛대 역사를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결 론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세계 인류에게 전한 표어가 된다. 아무리 서 아시아의 모교회지만 촛대를 거두시겠다고 말씀한 것은 전 세계 기독교의 지침이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사명적인 모교회지만 처음 사랑을 잃고 보니 아무런 사명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기독교는 완전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종말의 사랑은 좀더 강권적인 사랑이 있어서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절뚝발이 같은 영계를 가진 자라도 끌어다가 내 집을 채우리라는 것이 기독교 종말적인 오메가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 사랑보다는 좀더 강권으로 사랑을 베풀려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역사이니 처음 사랑을 잃었다면 종말의 역사와는 하등 관계가 없을 것이다.